사금파리 한 조각

2002년 미국 최고의 아동문학상인 존 뉴베리상을 수상한 <사금파리 한조각>
달팽군이 빌려와서 함께 읽어 보았습니다. 부모님이 다 한국사람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살면서 영어를 주로 쓰도록 교육받고 자라서 영문과를 졸업하고 영어로 글을 쓰는 일을 하던 그녀가 영어로 써낸 한국을 소재로 한 동화. 한국어를 못하면서도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음이 소설 전체에서 느껴졌습니다.

주로 12세기 경에 만들어 졌다는 상감청자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매화꽃병. 우리가 역사책에서 사진한장으로 배웠던 그 당시를 배경으로 그녀의 소설은 생동감있게 펼쳐집니다. 목이, 두루미 아저씨, 민영감과 아줌마, 왕실 감도감 등등 각각의 인물들은 선량하고 친근하다. 가난할지언정 도둑질이나 구걸을 하지 않고 자존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두루미 아저씨, 투철한 장인정신을 가지고 부지런히 작품에 몰두하고, 표현하지 못하지만 속정 깊은 민영감, 마음씨 착하고 주변 사람들을 잘 배려하는 밝고 긍정적인 민영감의 부인, 높은 자리에 있음에도 상대방을 권위로 누르지 않고 공정하게 실력을 평가하며 외모나 지위가 아닌 사람의 진심과 능력을 알아보는 눈을 지닌 왕실 감도감.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멋지고 긍정적인 인간군상들을 담아낸 것이 참 좋았습니다. 4학년 권장도서 리스트에 있었지만, 좀 더 고학년 아이들이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금파리 한조각
카테고리 아동
지은이 린다 수 박 (서울문화사, 2005년)
상세보기

'이렇게 시끄러워서야 부여 사람들은 과연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나 있을까?' 부여에 도착한 목이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많은 물건을 팔고 있고 번화한 부여는 살기 편하고 재미있는 곳이었을 겁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 역시 번화하고 모두들 바쁘게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그런 삶 속에서 우리는 과연 '스스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나 있을까?' 현대사회의 사색과 명상의 부재를 살짝 꼬집어 낸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단어 하나, 하나 참 아름다웠습니다. 

목이는 비록 부모를 여의고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왔지만, 두루미 아저씨라는 보호자겸 멘토를 두어서 참 행복한 아이였습니다. 한쪽 다리를 절어 약값으로 가진 재산을 다 날리고 다리밑에서 근근히 살아가는 아저씨와 함께 살아가는 목이. 남들이 다 거둔 논의 낱알을 줍거나 음식쓰레기에서 엊은 음식으로 연명을 해가는 두 사람이지만, 절대 도둑질이나 거짓말과 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처지를 담담하게 긍정하고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노력합니다.

목이는 어려운 상황에서 두루미 아저씨가 해주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립니다.

목이는 이따금 아저씨가 이런 말을 했던 걸 떠올렸다. '학자들은 이 세상의 고귀한 단어들을 읽어내지. 그러나 너하고 나는 세상 그 자체를 읽는 법을 익혀야 한다.' 
"노동은 사람을 품위 있게 만들지만, 도둑질은 사람에게서 품위를 빼앗아가는 거야." 두루미 아저씨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갑자기 두루미 아저씨가 소리를 내는 바람에 목이는 깜짝 놀랐다. "만일 누군가 어떤 발상을 혼자서 간직하고 있을 경우에 그 발상을 몰래 취하거나 속임수로 손에 넣는다면, 그건 도둑질이라고 볼 수 있어.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의 발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는다면, 그 발상은 그 때부터 그 사람만의 것이 아니지. 온 세상의 것이 되는 거야."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두루미 아저씨가 덧붙였다.
"네 마음은 네가 송도까지 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하지만 네 몸한테는 그 사실을 일러주면 안 돼. 언덕 하나, 골짜기 하나에, 하루. 이처럼 한 번에 하나만을 생각하게 만들어야 돼. 그러면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마음이 지치는 일은 없을 거야. 하루에 마을 하나씩. 목이야, 이게 네가 송도까지 갈 방법이야."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이 있는데, 그 때마다 내 곁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게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요. 달팽군에게 제가 그런 행운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달팽군이 있는 그대로, 멋지게 자라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참고로, 인터넷에서 상감청자에 대해 잘 정리된 포스트가 있더군요.
국보급 상감청자 관련 글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