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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15 [서평] 엄마가 수학을 못해도 아이가 수학을 잘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수학의 신 엄마가 만든다> 9
  2. 2008.12.20 [서평] 친절한 복희씨 7
  3. 2008.11.17 사금파리 한 조각 9
  4. 2008.11.04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19
  5. 2008.10.20 기차는 7시에 떠나네 10

[서평] 엄마가 수학을 못해도 아이가 수학을 잘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수학의 신 엄마가 만든다>


한국 다녀오면서 얻어온 블로그 첫 선물이네요. 달팽군을 위해 블루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곧 5학년이 되는 달팽군의 수학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육아를 위한 책들은 많이 읽었지만,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이 담긴 책은 거의 읽지 않았기에 신선했습니다.
문과체질인 달팽맘은 외국어는 이것저것 많이 공부했기에 나름의 노하우가 있지만, 솔직히 수학에는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래, 결심했어. 나도 달팽군의 수학매니져로 거듭나겠어! "


학원을 운영하다 보면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 '아이답게 놀게 하겠다.', '공부 스트레스를 안 받게 하고 싶다.', '철들고 할 때 되면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엄마들이 의외로 많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런 엄마들은 다음의 두 부류중 하나다. 본인이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없거나, '나중에 학원 보내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무관심한 엄마.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이끌어주었으면 잘했을 아이들이 시기를 놓쳐서 고생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당장 중학교에만 가도 수학이 너무 어렵다고 포기하려는 아이들이 속출한다. 이런 아이들은 고등학교에 가면 그야말로 자포자기하게 된다. 

"아이를 놀게만 하지 말고 하루에 30분만이라도 꼭 수학을 풀게 하세요. 그런 훈련이 안 되어 있으면, 나중에 수학이 어려워질 때 정말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합니다. " 이게 현실이다.

아이이게 수학자신감을 키워주려면 고민하지 말고, 바로 지금 시작하자!  

'저자 서문 中에서' 

서문을 읽으며 뜨끔해졌습니다. 달팽군은 어릴 때부터 숫자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계산도 빠른 편이었고, 숫자를 반복해서 쓰고 가지고 놀기 좋아했습니다. 할머니와 삼촌이 장난삼아 가르쳤는데, 여섯살 때 이미 19단을 외웠습니다.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은 적도 없이, 엄마랑 문제집을 같이 조금 풀었을 뿐인데도 학교 수학성적도 좋은 편입니다. 그럴수록 더 키워줬어야 하는데, 안심하고 '학교성적을 따라가니 됐어.'라고 생각하고 내버려 뒀던 것을 반성했습니다. 

유비무환!

늦어서 후회하지 말고, 미리미리 준비해두면 아이가 덜 고생하겠지. 극성엄마가 아니라 열성엄마가 되고 싶어요 .  

물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놀고, 열심히 먹자."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수학공부도 영어공부만큼 장기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는 만큼 어릴 때 좋은 습관을 들여주고 싶습니다. 제 자신부터 수학을 두려워 하지 말고, 실생활에서 좀 더 달팽군과 수학적인 대화를 나눠야 겠습니다.

복합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는 서술형 문제를 매일 조금씩이라고 풀 것과 (어제부터 하루에 경시대회 문제 6개씩 풀고 있습니다. ^-^ 바로 실천!) 오답노트 만들기, 자동차 번호판을 이용한 놀이등 많은 실질적인 팁을 얻어서 유용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운 경험과 20년 이상 사교육에 종사했던 경험에서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노하우를 구체적으로 적어두어서 좋네요. 수에 대한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3살부터 초등학생엄마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밥을 먹으면 힘이 생기지? 밥 한공기는 얼마만한 힘을 내게 할까?"
"화장실에 있는 휴지는 몇 m나 될까?"
"지구의 둘레를 어떻게 잴 수 있을까?"

수학만큼 상상력을 자극하고 실생활에 유용한 학문도 없다. 로켓에 관심이 많은 아이라면, 로켓을 우주 궤도로 쏘아 올리기 위해서는 얼마만한 속도로 쏘아 올려야 하며, 정확한 각도가 왜 필요한지 이야기를 해준다. 로켓을 쏘아 올리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는 얼마나 되는지 상상해보라고 하는 건 어떨까?

우유를 좋아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루에 마시는 우유의 양은 얼마나 될지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한다. 자동차로 여행을 할 때 목적지까지 가려면 기름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알려주는 것도 수학이다. (36페이지)

목차
저자 서문 : 수학 한 가지만 잘해도 인생이 열리고, 그 첫걸음은 너무나 소박하다.
1장: 수학 상위 3 퍼센트, 수학의 신 만드는 엄마의 노하우
2장: 초등학교 입학 전, 수학적 바탕 완성하기
3장: 초등 1학년, 수학과 어떻게 친해질까?
4장: 초등 2학년, 어떻게 수학적 능력을 키울까?
5장: 초등 3학년, 본격적으로 수학 실력 키우기
6장: 수학 매니저, 어떻게 할 것인가?
7장: 막막한 우리 아이 문제, 케이스별 맞춤 상담  

달팽군, 이제 시작해 볼까?! 각오하라구.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약해보자구! 내가 널 수학의 신으로 만들어 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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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친절한 복희씨

친절한 복희씨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박완서 (문학과지성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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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소설가 '박완서'씨의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꼴지에게 보내는 갈채'라든지 MBC 모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해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등의 책들을 읽어보고 난 후 나의 정서와 맞지 않는 작품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왠지 모르지만 교훈을 주는 도덕적인 류의 이야기들은 읽으면 거부감이 들거든요. 1930년대에 태어났다는 작가의 나이에 대한 선입견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악한 것들은 살짝 미뤄두고 긍정적인 것만 보고, 현실적이지 못한 고루한 노인일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사실 선배언니가 박완서씨의 소설책을 건네 줬을 때 그다지 감흥이 없었습니다. 좋아하는 선배가 한국에서부터 날라다 준 책이니 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의무감 정도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두 편은 일기를 쓰듯이 속마음을 풀어낸 글들로 이 책이 소설책이 아니라 산문집이라고 착각을 하면서 읽어 나갔습니다. 본인과 가족의 이야기를 이렇게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써도 되나 걱정까지 하면서. 세 편째에서야 '아, 이 책이 소설책이구나.'하고 깨달은 형광등 달팽맘.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이 번주에 블로그도 안 들락거리고 출 퇴근 시간 짬짬이, 그리고 퇴근 후에 책을 읽었습니다. 읽을 수록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단편이었지만 그 감동과 깊이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아가씨들의 이성과 결혼생활에 대한 환상이 아닌,
아줌마들의 억척스러운 생의 한 가운데 있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가뿐 생활력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모질게 살았어도, 순탄하게 살았어도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야 얻어지는 연륜.
어떤 일에도 '그럴 수도 있겠군.'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함.
체면치레나 금기를 넘어선 인생에 대한 솔직담담한 자세와 사고.
충격적이고 자극적일 수도 있는 소재들을 자연스럽게 이야기속에 넣고 풀어가는 작가의 노련함이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아서 좋네요.

몇 권 더 박완서씨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 졌습니다.
여태까지 편견을 가지고 책장을 펼쳐보지 않았던 책들을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오랫동안 이 분의 책을 보고 싶네요.
박완서씨가 31년생이시니 이 소설들을 쓰셨을때 이미 일흔이 넘어선 나이였군요.
제 나이 일흔에 저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상상도 살짝 해봅니다.

그 때 나도 삼십대에게 공감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면 박완서씨가 위대해 보이기까지 하네요.


책 속에서

* 수록 소설

그리움을 위하여
그 남자네 집
마흔 아홉살
후남아, 밥 먹어라
거저나 마찬가지
촛불 밝힌 식탁
대범한 밥상
친절한 복희씨
그래도 해피 엔드

사금파리 한 조각

2002년 미국 최고의 아동문학상인 존 뉴베리상을 수상한 <사금파리 한조각>
달팽군이 빌려와서 함께 읽어 보았습니다. 부모님이 다 한국사람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살면서 영어를 주로 쓰도록 교육받고 자라서 영문과를 졸업하고 영어로 글을 쓰는 일을 하던 그녀가 영어로 써낸 한국을 소재로 한 동화. 한국어를 못하면서도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음이 소설 전체에서 느껴졌습니다.

주로 12세기 경에 만들어 졌다는 상감청자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매화꽃병. 우리가 역사책에서 사진한장으로 배웠던 그 당시를 배경으로 그녀의 소설은 생동감있게 펼쳐집니다. 목이, 두루미 아저씨, 민영감과 아줌마, 왕실 감도감 등등 각각의 인물들은 선량하고 친근하다. 가난할지언정 도둑질이나 구걸을 하지 않고 자존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두루미 아저씨, 투철한 장인정신을 가지고 부지런히 작품에 몰두하고, 표현하지 못하지만 속정 깊은 민영감, 마음씨 착하고 주변 사람들을 잘 배려하는 밝고 긍정적인 민영감의 부인, 높은 자리에 있음에도 상대방을 권위로 누르지 않고 공정하게 실력을 평가하며 외모나 지위가 아닌 사람의 진심과 능력을 알아보는 눈을 지닌 왕실 감도감.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멋지고 긍정적인 인간군상들을 담아낸 것이 참 좋았습니다. 4학년 권장도서 리스트에 있었지만, 좀 더 고학년 아이들이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금파리 한조각
카테고리 아동
지은이 린다 수 박 (서울문화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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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끄러워서야 부여 사람들은 과연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나 있을까?' 부여에 도착한 목이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많은 물건을 팔고 있고 번화한 부여는 살기 편하고 재미있는 곳이었을 겁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 역시 번화하고 모두들 바쁘게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그런 삶 속에서 우리는 과연 '스스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나 있을까?' 현대사회의 사색과 명상의 부재를 살짝 꼬집어 낸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단어 하나, 하나 참 아름다웠습니다. 

목이는 비록 부모를 여의고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왔지만, 두루미 아저씨라는 보호자겸 멘토를 두어서 참 행복한 아이였습니다. 한쪽 다리를 절어 약값으로 가진 재산을 다 날리고 다리밑에서 근근히 살아가는 아저씨와 함께 살아가는 목이. 남들이 다 거둔 논의 낱알을 줍거나 음식쓰레기에서 엊은 음식으로 연명을 해가는 두 사람이지만, 절대 도둑질이나 거짓말과 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처지를 담담하게 긍정하고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노력합니다.

목이는 어려운 상황에서 두루미 아저씨가 해주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립니다.

목이는 이따금 아저씨가 이런 말을 했던 걸 떠올렸다. '학자들은 이 세상의 고귀한 단어들을 읽어내지. 그러나 너하고 나는 세상 그 자체를 읽는 법을 익혀야 한다.' 
"노동은 사람을 품위 있게 만들지만, 도둑질은 사람에게서 품위를 빼앗아가는 거야." 두루미 아저씨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갑자기 두루미 아저씨가 소리를 내는 바람에 목이는 깜짝 놀랐다. "만일 누군가 어떤 발상을 혼자서 간직하고 있을 경우에 그 발상을 몰래 취하거나 속임수로 손에 넣는다면, 그건 도둑질이라고 볼 수 있어.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의 발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는다면, 그 발상은 그 때부터 그 사람만의 것이 아니지. 온 세상의 것이 되는 거야."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두루미 아저씨가 덧붙였다.
"네 마음은 네가 송도까지 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하지만 네 몸한테는 그 사실을 일러주면 안 돼. 언덕 하나, 골짜기 하나에, 하루. 이처럼 한 번에 하나만을 생각하게 만들어야 돼. 그러면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마음이 지치는 일은 없을 거야. 하루에 마을 하나씩. 목이야, 이게 네가 송도까지 갈 방법이야."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이 있는데, 그 때마다 내 곁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게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요. 달팽군에게 제가 그런 행운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달팽군이 있는 그대로, 멋지게 자라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참고로, 인터넷에서 상감청자에 대해 잘 정리된 포스트가 있더군요.
국보급 상감청자 관련 글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카테고리 아동
지은이 J.M. 바스콘셀로스 (동녘,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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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독후감을 쓰기위해 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쯤에 이 책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 이름이 제제였다는 것과 뭔가 슬픔과 가난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 제목이 예쁘게 느껴졌던 것등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지지난주에 달팽군이 학교에서 귀여운 꼬마가 그려진 2007년 개정판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빌려 왔습니다. 달팽군은 주말내내 책을 읽었고, 그 나이때의 저처럼 독후감을 써서 제출했습니다. 

* 달팽군의 독후감입니다. 

책 내용보다는 자기가 태어나서 읽은 책 중에 가장 페이지수가 많았다는 것에 더 의의를 두는듯 합니다. -_-;;; 독후감을 길게 쓰고 싶어하지 않길래 대화로 어떻게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해 봤더니, 자기처럼 야단맞는 제제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제제가 주위사람들에게 욕하는 장면을 왜 그렇게 통쾌해하면서 자기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지... 녀석, 사는 게 힘들었나 봅니다. 

그러다가 어제 출장 다녀오는 기차안에서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일본인 동료가 옆에 앉아 같이 책을 읽었는데, 창피해서 몰래 몰래 눈물을 훔치다가 결국 티슈를 꺼내서 눈물도 닦고, 코도 풀고 말았습니다. 제제의 순수한 마음과 그걸 알아주기엔 너무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이 왜 그리 슬픈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책은.. 어른을 위한 동화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을까요? 

<책 속에 줄 친 구절들>


다섯살짜리 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 부모와 주위사람들로 충분히 보호와 양육을 받지 못하고, 살기 위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 똑똑하고, 감수성이 예민해서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도 보는 눈을 가진 아이.
 
엄마가 되고 난 후에 읽는 이 글은 어린아이일때 읽는 글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네요. 제제는 어렸을때의 자신이기도 하고, 지금의 내 아이의 분신이기도 하고, 모든 사람들의 순수하고 때묻기 쉬운 유년시절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아이들이 읽고 이해할만한 이야기가 아닌데, 왜 초등학교때부터 추천도서에 올라있는 걸까요. 이 글을 읽고 동감하거나 이해한다면 그건 아이가 아닌 걸텐데.. 그리고 형제 자매도 없이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아이들도 이 글을 읽으면 감동할까요? 궁금해집니다.   
 
간만에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책을 읽었습니다. 정신적으로 좀 정화가 된 기분입니다. 조금은 아이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악의없이 한 아이의 행동에 화를 내고, 꾸짖기만 하는 권위적인 부모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순수한 아이의 영혼을 오래오래 간직하도록 지켜주면서 건강한 정신을 가진 어른이 되도록 기르고 싶습니다. 세상에 제제같이 너무 일찍 철드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합니다.
 
 
지난6월 회사여행으로 태국에 갔을때 아유타야 유적지 근처에서 만난 여자아이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리 아들보다 조금 어린 것 같은데,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내리면 손에 연꽃을 쥐고 내밉니다. 한송이가 20바트였던 것 같습니다. 주위에 아이들이 많아서 몰려들게 무서워 (캄보디아에서 무서운 경험을 해서, 겁이 납니다.) 계속 피해다니다가 버스에 오르기 전에 동료에게 동전이 없냐고 물어서 빌렸는데, 가격을 잘못알고 10바트를 내밀었더니 20바트랍니다. 그래서 그냥 버스에 올랐습니다. 보통 호객행위를 하던 아이들은 사지 않고 그냥 가면 욕을 한다거나 화를 내는데, 이 아이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버스에 올라타서 나무그늘에 앉아있는 아이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러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아이가 벌떡 일어나거나 도망갈 줄 알았는데, 카메라를 향해 수줍어하면서도 해맑은 미소를 짓습니다. 아이는 돈이 필요해서 장사를 하지만, 때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때 아빠의 마음을 아프게 한게 가슴이 아파 구두통을 매고 하루종일 일을 나섰던 제제의 모습에서 이 아이가 떠올랐습니다. 호화로운 자동차에 앉은 부인이 구두를 닦지는 않았지만, 돈을 쥐어주려고 하자 자기는 구두를 닦아서 돈을 버는 노동을 하는 것이지 거지가 아니라며 뒤돌아서던 제제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노동이 아닌 놀이를 하면서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만만치 않지만, 세상의 무게를 짊어질 수 있을만큼 등이 단단해 질때까지는 어른들이 잘 보호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삶에 고단한 아이들이 없어지길 기도합니다.
 

기차는 7시에 떠나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신경숙 (문학과지성사,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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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때는 소설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마냥 행복하고 가벼운 마음은 소설속의 인물과의 공감을 느끼기에 어려움을 느낀다. 우울할 때 혹은 외로울 때, 마음이 공허할 때 소설을 집어든다. 나를 비워내는 만큼 소설속의 인물을 나 자신에 가깝게 생생하게 느낀다. 너무나도 우울하던 주말 우연히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왠지 모를 큰 위로가 되었다. 소설 속에서 처절하게 자기 자신의 과거를 찾아 헤매는 주인공과 동행해서 함께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너무 큰 슬픔은 생존을 위한 자기방어로 그 슬프고 괴로운 기억을 서서히 자신의 머리속에서 밀어내서 다시 떠오르지 않게 밀봉해 버렸다. 무표정하고 건조한 서른 다섯살 여자는 비슷한 무게의 슬픔을 겪은 스무살의 여자와 동행해 자신의 과거를 향해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 과거와 다시 조우했다. 우울하고 외롭게 섬처럼 떠도는 소설속 인물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중에서도 서로에게 배려하고, 따뜻한 온기를 나눈다. 깊은 절망속에서도 다시 일어서고 희망을 보는 건 사람때문이다. "사람은 사람에 의해서 살아간다. 이렇게." 

나도 하린처럼 굶고 지친 어린 짐승의 새끼처럼 외롭고 힘들때 찾아가 따뜻한 죽 한그릇을 내어주고, 쓰다듬어 주고, 이불을 내어주고 쉬어가게 하는 윤같은 친구가 있다면, 그리고 그런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깍아내리지 않을 사람이 나에겐 몇이나 있던가.

이 책을 읽으니 주인공들의 외로움의 파장이 나에게 오히려 위로가 된다. 소설속의 인물들은 어려움을 겪지만, 세상과 가족 친구들로부터 완전히 내쳐지지는 않는다. 견디고, 살아간다. 사람은 다 비슷하게 느끼고, 비슷하게 괴로우며 사는 건 아니겠니.. 견뎌보렴.. 하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나아가려고 애쓴다. 그거면 족하다.



마음에 와 닿은 구절들을 끄적거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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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땐 20대가 되면, 20대 땐 30대가 되면 막막하고 불안한 마음이 치유되리라, 생각했거든. 무엇인가 든든한 것이 생겨서 아슬아슬한 마음을, 늘 등짝에 멍이 들어 있는 것 같은 마음을 거둬가주리라. 그렇게 부질없이 시간에 기댔던 것 같아. 20대의 어느 대목에선가는 20대가 참 길다고 생각하기도 했지. 격정은 사라져도 편안해지리란 이유로 어서 나이를 먹었으면 했어. 서른이 되면, 혹은 마흔이 되면 수습할 길 없는 좌절감에서는 빠져나오지 않겠는가. 살아가는 가치 기준도 생기고 이리저리 헤매는 마음도 안정이 되지 않겠는가. 그때쯤이면 어느 소용돌이에도 휘말리지 않고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지지 않겠는가."
"그런데요?"
"어리석었어. 무슨 생각으로 흘러가는 시간에 기댔을까? 시간은 밤에 문득 잠이 깨서 그저 가만히 누워 날을 새게 하거나, 현재진행형의 일들을 문득 지워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자버리게 하거나 했을 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평화로워지기는 커녕 이제는 무슨 일을 시작해서 실패를 하면 그 실패의 영향이 내내 앞으로의 인생에 상처로 작용하게 될 것 같아 살얼음판을 딛는 것같이 조심스러워. 어쩌면 인간이란 본래 이런 것일까? 본래 어느 구석이 이렇게 텅 비어 있고, 일생을 그 빈 곳에 대한 결핍을 지니고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일까?"
그가 나를 깊이 껴앉았다.
"그러니까 당신이 내 옆에 있었으면 해.... 당신과 함께 있는 이런 분위기가 좋아. 정서적으로 안정이 돼."
그가 나를 더 깊이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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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등에서 번져나오는 온화한 불빛. 벽면에 그려지는 윤과 나의 실루엣. 내 코에 부벼지는 윤의 따뜻한 어깨. 후욱, 들이쳤다 멀어지는 빗소리. 사람은 사람에 의해서 살아진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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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청춘의 한때를 기억하지 못한 채 서른다섯이 되는 동안 여기저기 마음이 상하고 지치기도 했지. 기억을 저버린 채 세상은 변하지 않고 돌아간다. 달콤한 잠에 빠졌다가도 빗소리나 고독한 건물의 검은 그림자 같은 것에 잠이 깨면 어김없이 중얼거리곤 했지. 한발짝만 더 나아가면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어. 잃어버린 기억으로부터... 청춘 시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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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있자꾸나. 흰 모래 위 햇빛 아래 서 있는 미란을 나는 담싹 업었다. 외로웠는가. 미란은 얼굴이 납작해질 정도로 내 등에 얼굴을 대고 문질렀다. 잊으려고 하지 말아라. 생각을 많이 하렴. 아픈 일일수록 그렇게 해야 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잊을 수도 없지. 무슨 일에든 바닥이 있지 않겠니. 언젠가는 발이 거기에 닿겠지. 그 때, 탁 차고 솟아오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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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애는 마음에 불이 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마음의 저 불이 붙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를 너무 사랑해서 그만 상하게 할 것이다. 그때까지 이 애는 드럼스틱을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며 무엇이든 보기만 하면 두들기며 견딜 것이다. 그러다가 언젠가 미란은 지난 여름날의 나처럼 갑자기 드럼을 손에서 놓고 잃어버린 얼굴들을 찾아 헤맬 거다. 무성 영화 같은 기억의 시간들을 찾아 거슬러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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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당신을 어리둥절하게 할 만큼 마음이 몹시 혼란스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따금 나는 내 삶이 필름이 들어 있지 않은 카메라를 누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이 결락감이 무엇인지를 당신께 설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뭐라고 말해야 하나요. 언젠가 무슨 일로인가 지독하게 헤어지기 싫은 무엇과 억지로 헤어져서 여기로 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고 해도 될까요. 너무나 피투성이로 헤어져서 아직도 그 피가 마르지를 않은 것 같다고. 당신의 청혼은 그 헤어짐을 상기시켰어요. 이 세상 어디에선가 나를 잘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이 아직도 그의 수첩에 나의 이름을 적어가지고 지니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이렇게 생생하게 간직한 채 당신과 결혼할 수는 없다는 게 내 마음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나는 지난 날의 몇개의 조각들만 가지고 되돌아오게 될지도 모르지요. 더 단편적이 되고 더 종잡을 수 없게 될 지도. 하나 나는 여전히 당신이 내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몹시 흔들립니다. 늘 당신과 닿고 있고 싶은 내 마음은 여전합니다. 당신을 믿고 당신을 의지하는 마음은 사실입니다. 당신과 닿아 있지 않으면 너무나 막막해서 고아같은 기분조차 듭니다.
  나는 무슨 일로인가 어느 부분이 훼손된 인간이에요.
  그런 인간이 지니고 있는 나약함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당신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순간들은 늘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합니다. 내가 그토록 끈질기게 당신이 어디에 있는가, 를 알고 싶어하는 건 다시는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지금 당신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건 나의 행복이었습니다. 내 부친이 가평에서 사향노루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과 다름없었어요. 생각으로라도 그렇게 당신과 닿아 있지 않은 순간엔 우리들의 관계가 곧 사라져버릴 것 같은 염려가 들곤 했습니다. 지금도 당신과 나의 자취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나를 끔찍하게 합니다. 꼭 붙들고 놓지 않으면 소멸을 막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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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언니는 두려워하지 않고 내게 피아노를 쳐주었다. 내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어느 날 처녀가 되어가던 언니는 어린 나를 무릎에 앉히고 물었다.
 "이 소리가 널 덜 슬프게 하니?"
 나는 고갤 끄덕였다. 언니는 나를 무릎에 앉히고 머리에 빗질을 해주었다.
 "슬퍼하지마... 물 속에 하늘이 비치듯이 그저 네 마음에 뭔가 비칠 따름이야. 네 마음이 물과 같이 투명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은 하지마. 널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어른이 되면 그래서 네 마음에 다른 것이 비치게 되면 그 땐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지지 않아도 그때는 그 힘으로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해줄 수 있을거야. 그때까진 너와 나만이 아는 비밀이야."
 불타는 듯한 노을이었다. 나는 언니의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 그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밝고 아름다운 노을은 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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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 사람이 그랬지.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 그 때가 내가 가장 외로운 때였지요, 라고. 나도 그래. 내가 뭔가를 물끄러미 응시하거나 손가락으로 한 가지 동작을 계속하고 있을 때 그런 때가 내 마음이 외로운 때야."
"그러면 좀 나아?"
"아니... 그냥 외로우니까 그러구 있는 거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으니까 말로도 안되고 손으로도 안되고 도리 없이 주저 앉아 있거나 바라볼 수 밖에 없으니까."
"이모만큼 나이가 들어도 그래?"
가끔씩 차창에 달라붙던 빗방울이 갑자기 세졌다. 빗방울은 이제 빗물이 되어 주르륵 흘러내린다. 빗소리가 솨아 밀려들었다가 사라지곤 한다. 회오리바람이로도 부는 것일까? 빗소리가 확 밀려갈 때마다 차 안은 갑자기 고요해진다. 외로움에 나이가 무슨 소용인가. 서른 다섯. 몸속의 습기가 메말라가는 나이. 만남도 이별도 새롭지 않고 처음 만나는 사람조차 언젠가 한번은 본 듯한 느낌이 드는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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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이 텁텁하다. 내가 못먹겠다고 숟갈을 죽그릇 속에 내려놓자 윤이 다시 숟가락을 가져가서 뽀얀 죽을 소복이 담아 내 입술 가까이 가져다 댄다.
"어디에선가 읽으니까 마음이 어지러울 때, 성이 날 때... 그럴 때 따뜻한 음식이 좋은 약이래. 성도 가라앉히고 마음도 차분하게 하고 그런더는군."
"........"
"조금만 먹어... 내 성의를 봐서."
마음이 어지러울 때? 성이 날 때?
"가끔 생각해. 네가 곁에 없었으면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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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과 헤어지고 그 남자와도 더는 만나지 않았어. 인생은 거기서 끝난 걸로 치고 덤으로 살자, 했어.. 그런데 야릇하지. 작년부터 이 세상 어디서도 나를 깎아 내리지 않을 거라 여겨지는 사람은 현뿐이었다는 생각이 들곤 했지."
윤은 바스락거리며 빗물처럼 웃었다.
"어디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깎아 내리지 않을 사람, 내 편인 사람을, 그런 사람을 두 사람만 가지고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랬는데... 그렇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지. 그 사람과 네가 있으니까."
 나?
 매번 너에게 달려와 따뜻한 음식만 먹고 가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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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꾹 눌러쓴 글씨로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여라, 하고 씌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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